068식물의 삶을 관찰하다 보면, 눈에 보이는 모습은 그 식물의 삶에서 지극히 일순간의 장면이라는 것. 뿌리나 열매 같은 기관은 생의 어느 순간을 보여줄 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. 그들에게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부위와 기관이 있다. 마침맞은 환경에서 그 모든 기관이 유연하게 순환할 때, 비로소 식물의 삶은 완성된다. 274식물은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의 것을 움직이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. 자신이 뿌리내린 그 환경에 순응하고 긴 시간 동안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화한다. 그 변화의 결과는 형태로 나타난다. 그런 식물의 형태를 기록한다는 건 단지 겉모습을 그리는 게 아니라 종의 역사,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. 꽃과 열매와 잎을 떨구고, 앙상한 가지만 내민 나무를 보고 누군가는 별 볼 일 없다 말할지 모른다. 하지만 사실 맨가지만 남은 나무는 겨울에야 그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드러낸다. 다양한 수피의 색과 무늬, 두 갈래로 갈라지는 가지 사이의 각도, 곧은 선과 굽은 선. 맨가지를 드러낸 나무의 형태는 미적 차원을 넘어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 것 같다. '네가 아무리 선을 그어봤자, 내 가지처럼 자연스러운 곡선은 못 그을걸?' 하고. - 이소영, ⌜식물과 산책⌟ 글항아리, 2018 1 september, 2022Noru Yang 양노루